이 말이 <소설>이란 어쩔 도리 없이 <낭만주의적> 장르라는 주장으로 오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낭만주의라는 19세기의 사조는 결코 이성주의와 절연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낭만주의는 이성주의의 거울상이었다. 데카르트는 인간의 육체적 본성에 기인하는 후회스러운 부산물인 감정적 경험을 <희생시킨> 댓가로, 형식적 합리성이며 논리적 계산능력을 인간본성의 지고한 <정신적> 소양의 수준으로 높힐 수 있었다. 반면에 워즈워드로부터 괴테에 이르는 낭만주의 시인들과 소설가들은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들은 오직 계산적 이성에 의해 지배되는 삶이란 살아갈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여겼고, 감정적 경험의 심연에 내맡겨진 삶에 높은 가치를 부여했다. 그러나 낭만주의의 입장이 17세기의 이원론을 <극복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것은 이원론을 수용하되 이성주의와는 정 반대편으로 기운 것에 불과하다.
_ 스티븐 툴민 지음, 이종흡 옮김,『코스모폴리스』(마산: 경남대학교출판부, 2008), 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