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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l 26th, 2009 @ 3:20 pm

그렇지만 오늘날의 원리파 기독교도들이 즐겨 사용하는 <세속적 인문주의>는 애매하고도 쓸모없는 개념이다. 이 구절은 자칫 독자들에게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이 기독교에 적대적이었고 비록 무신론적이지는 않았어도 반종교적일 수는 있었다는 상상을 불러 일으키기 쉽다.

이러한 상상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실제로 16세기의 주역들은 양심에 비추어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기독교인들이었다. 에라스무스는 독단적 교리를 조롱한 『우신예찬』을 썼지만 카톨릭 교회의 독실한 신자였다. 그는 마르틴 루터 Martin Luther가 가장 존중한 친구 중 한명이기도 했다. 아마도 에라스무스로서는 루터의 개혁 열정이 막다른 골목까지 치닫지 않도록 그 독일인 친구를 설득하는 일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루터에 대한 우호적 비판자였던 에라스무스는 문제를 자기들끼리 조용하게 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공적인 대결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루터가 몹시 격앙되어 있었기 때문에 에라스무스는 루터를 설득하지 못했다.) 에라스무스가 죽은 1530년대에 어린아이였던 몽테뉴도 비슷한 맥락에서 신학적 확실성에 대한 주장을 주제넘고 독단적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렇지만 몽테뉴 역시 독실한 카톨릭 신자를 자임했다. 더구나 그는 로마 방문 시에 교황의 알현을 청할 정도로 권위있는 신자였다. 이런 점에서 원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세속적 인문주의>는 착각에 불과하다. 15-16세기에 형성된 실생활에서의 인문주의는, 학문영역에서의 인문학과 마찬가지로, 기독교가 지배하던 유럽 문화 <내부의> 현상이었다. 실제로 인문주의자들은 종교개혁에 크게 이바지 했던바, 칼뱅처럼 프로테스탄트 인문주의자로서 기여하기도 했지만 로마 카톨릭 체제 안에서 인문주의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_ 스티븐 툴민 지음, 이종흡 옮김,『코스모폴리스』(마산: 경남대학교출판부, 2008), 4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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